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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뉴스] [이희용의 글로벌 시대] '스티븐스 처단' 장인환 의거 110주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8-03-21 00:00 | 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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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린 전명운ㆍ장인환 의거 97주년 기념식 및 합동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장인환(왼쪽)·전명운 의사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05년 3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린 전명운ㆍ장인환 의거 97주년 기념식 및 합동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장인환(왼쪽)·전명운 의사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30분, 조선통감부 외교고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페리빌딩 선착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샌프란스시코만 건너편의 오클랜드역에서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때 한 조선인 청년이 나타나 권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철컥" 소리만 연거푸 날 뿐 두 발 모두 불발이었다. 당황한 청년이 스티븐스에게 달려가 권총으로 가격하고 달아나려 하자 스티븐스가 붙잡아 두 사람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그 순간 또 다른 조선 청년이 세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첫 발은 스티븐스와 뒤엉켜 있던 청년의 어깨를 관통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스티븐스의 등과 허리에 각각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병원에서 탄환 제거 수술을 받다가 이틀 후 숨을 거뒀다.


스티븐스를 사살한 장인환(1876∼1930년)은 현장에서 체포돼 1급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의 총탄을 맞고 스티븐스와 함께 병원으로 옮겨진 전명운(1884∼1947년)도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으나 석 달여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두 사람의 의거 소식은 뜻있는 재미동포들을 고무시킨 것은 물론 한반도와 함께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로도 전해져 독립투쟁의 열기를 북돋웠다. 독립운동사에서 개인이나 소규모 조직으로 암살과 파괴를 주로 하는 활동을 '의열(義烈)투쟁'이라고 부르는데, 스티븐스 처단이 최초의 거사로 꼽힌다. 전명운·장인환 의사가 지핀 의열투쟁의 불길은 이후 안중근, 이재명, 강우규, 김지섭, 나석주, 조명하, 이봉창, 윤봉길 등으로 이어졌다.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한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 [독립기념관 제공]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한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 [독립기념관 제공]


스티븐스는 1852년 미국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873년 주일 공사로 발령받은 대학 은사를 따라 주일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9년 뒤 주미 일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전직하며 일본 외교관으로 변신했고 갑신정변 뒤처리 임무를 맡은 이노우에 가오루 특명전권대사를 따라 1885년 1월 조선 땅을 처음 밟았다. 미일 간의 외교에서도 철저하게 일본의 이익을 챙겨 조국을 배신한 그는 1904년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돼 일제 침략의 앞잡이로 나섰다.


당시 미국 서부에서는 일본인 노동자를 배척하고 일본 학생의 공립학교 취학을 거부하는 등 반일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미국 정부도 1907년 11월 일본인 이민금지법을 의회에 제출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내 반일감정을 달래고 일본인 이민금지법의 의회 통과를 막고자 스티븐스를 파견했다. 스티븐스는 미국행 배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에 유익하고 한국 농민들은 일본인을 환영하고 있다"는 망언을 쏟아내 재미 한인사회를 격분시켰다. 재미동포 단체들은 한인공동회를 연 뒤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 묵고 있던 스티븐스에게 4명의 대표단을 보내 따졌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광무황제(고종)가 덕이 없고 백성이 어리석어 독립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이 도와주지 않으면 벌써 러시아가 강탈했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자리 잡은 장인환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제공]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자리 잡은 장인환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제공]


분을 참지 못한 재미동포들은 스티븐스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별렀다. 장인환도 그중 하나였다. 평안남도 평양 태생인 그는 1904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다가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철도역, 공장, 여관 등에서 일해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대동보국회에 가입해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그의 뜻과는 반대로 갈수록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특별한 학식이 없어 나라를 별달리 보국할 방책이 없으나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독립전쟁을 개시하는 날에는 반드시 칼을 차고 총을 메어 피를 뿌리겠다."


서울에서 태어난 전명운은 10대 때 시국강연회 등에 참여했다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1903년 하와이행 배에 올랐다. 돈이 없어 공부의 뜻은 접고 장인환처럼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다가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부두, 철로 공사장, 방직공장, 농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는 안창호 등이 결성한 공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전명운은 법정에서 "대한제국의 국록을 먹는 스티븐스가 일본을 돕고 우리나라를 배반해 애국심으로 총살하려 했다"고 당당히 진술했다. 둘은 거사 때까지 비슷한 행로를 걸어왔는데도 서로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동포들이 성금을 보내고 현지 언론들도 동정적인 논조를 펼치는 가운데 하버드대에서 수학하던 이승만은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의 재판에 참여할 수 없다"며 통역 요청을 거절했다.


담양전씨 문중이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8년 5월 5일 전남 담양에 건립한 전명운 의사 흉상과 기념비. [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담양전씨 문중이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8년 5월 5일 전남 담양에 건립한 전명운 의사 흉상과 기념비. [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보석으로 풀려난 전명운은 재미 일본인이 위해를 가할 것을 염려해 맥 필즈로 이름을 바꾼 뒤 1908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공립협회 지부 설치에 힘을 쏟고 최재형, 안중근 등이 조직한 동의회에서도 활동했다. 1909년 11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으나 1929년 부인이 아들을 낳다가 사망하고 아들도 6년 뒤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광복 후에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하다가 1947년 11월 18일 미국에서 생을 마쳤다. 유해는 조국을 떠난 지 90년 만인 1994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됐다.


금고 25년형을 선고받은 장인환은 1919년 1월 17일 가석방되고 1924년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1927년 조국으로 귀환했으나 정착하지 못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고생하던 그는 1930년 5월 22일 병원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75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장인환·전명운 의사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각각 추서했다.


며칠 뒤면 장인환·전명운의 의거 110주년 기념일이다. 올해도 샌프란시스코한인회가 한인회관에서 기념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재미동포가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별다른 기념행사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110년 전을 방불케 할 만큼 격랑에 휩싸여 있고 주변 강대국들의 지도자가 모두 패권추구형 강골들이어서 두 의사의 기개와 헌신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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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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